작년 가을 회사 근처 헬스장을 3개월 등록했었다. 그러나 초반의 좋은 기세에도 불구하고 출석율 5번 남짓 기록하며 완전 실패. 주요 실패원인은 나의 게으름이지만 그 외 다른 것들도 나열해보자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 후 밥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회사가 많은 동네다 보니 혼자 밥먹을 만한 환경이 되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오후에 졸립다.
시간에 쫓기며 운동해야 한다.
땀으로 인해 세탁을 자주 해야 한다.
어찌됐든 작년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이번에는 그냥 집 앞에 있는 헬스장을 등록했다. 밤 늦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어 좋고 주말에도 가능하니 더 좋다. 오랜만에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몸이 기뻐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진작에 필요한 거였는데 제대로 못했던 게 아쉽다. 이번에 등록한 3달은 완전 열심히 다녀서 건강해져야지.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인생은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저 길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줄을 알면 인생에서 괴로운 문제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는 불행한 인생이 있고 즐겁고 가볍고 행복한 인생이 있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나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눈으로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귀가 있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이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또 두 손이 있어서 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내면 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 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먹는 것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사는가?’ 하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으세요. 사는 것은 그냥 사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살 수 있으니까요.
만약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자유롭고 행복해지느냐를 생각하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느냐고 물으면 통상적으로 우리들은
첫째 돈이 많아야 한다, 둘째 지위가 높아야 한다, 셋째 명예나 인기가 있어야 한다는 식이에요. 그러나 행복은 돈과 지위와 인기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더 잘살고 있는데도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정치인, 관료들을 만나보면 이런 분들이 더 속박을 받고 괴로워합니다. 인기 있는 탤런트나 배우들도 외롭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가난하고 지위가 없으면 행복하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은 하루에 밥을 한 끼밖에 못 먹고 옷도 다 떨어진 것을 입고 가난하게 삽니다. 이 사람들 중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돈이 있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면 괴로워지고 어떻게 쓰면 행복해지는가? 어떻게 쓰면 속박을 받고 어떻게 쓰면 자유로워지는가?’ 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라고 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62억 인구 중에 50억이 넘는 인구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서 사는 게 꿈입니다. 거기 가서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아메리칸 드림’을 꿉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미국이나 캐나다에 살고 있으면서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어디를 간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아요. 즉 천국에 간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아요.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할 때, 당장 죽겠다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천국에 가서 괴로울지 즐거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음식이 필요하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에겐 옷이 필요해요. 그런데 최소한 하루에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고 몸을 가릴 수 있는 한 벌의 옷이 있는데도 온갖 불평으로 괴로운 사람은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저 길 옆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와서 노래 한 곡 해 보세요.”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기보다는 “저 노래 못해요.”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이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못하는 거고, 잘나고 싶거나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유롭지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없거나 잘 보이고 싶지 않으면 “노래 한 곡 하세요.” 할 때 “예” 하고 노래하면 되는 거예요. “무슨 노래를 불러라, 어떻게 불러라, 잘 불러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노래하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입니다. 길게 하라, 짧게 하란 얘기도 없으니 그냥 한 소절 부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딴 건 잘하는데 노래에 자신이 없으면 이 노래로 인해 내 평가가 달라질 것 같아서 망설이는 거예요. 또 내가 평소에는 노래를 잘하는데 내 앞에 부른 사람이 아주 노래를 잘 불러버리면 안 부르려고 해요.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부자유스러운 거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면 자연스럽게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래하러 나가세요.” 하면 나가서 노래 부르고 사람들이 듣기 싫어서 “이제 그만 하세요” 하면 또 “예, 알겠습니다.” 하고 들어오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노래 못한다고 다섯 번쯤 빼던 사람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노래를 안 부르고 옆에서 도와줄 수 없는, 모르는 노래나 가곡을 불러요.
이처럼 내가 남보다 잘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결혼 생활도 그냥 둘이 같이 밥 먹고 살면 되는데, 영화나 소설처럼 아기자기하고 가슴이 늘 찌릿찌릿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괴로워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연애할 때는 두근거리기도 했는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면 대화도 별로 없고 무미건조하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남편이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고 아내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도 ‘연애할 때보다 대화도 별로 없고 무미건조하다. 결혼 생활이 이건 아니야.’라는 식이에요.
밥은 특별한 맛은 없지만 몸에는 좋고, 인스턴트식품은 입과 혀는 좋지만 건강을 해치는 것과 같은 거예요. 결혼한 부부가 “우리 남편(아내)은 나를 끔찍이 사랑해. 나 없이는 못 살아.”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그것은 남편(아내)이 그어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 행복입니다. 울타리로부터 한 발만 밖으로 나가도 큰일 난 것처럼 불행이 닥쳐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장에 갇힌 새의 행복이에요. 진정한 행복도 아니고 자유도 아닙니다. 그래서 붓다가 남기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원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가볍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삶이 별 거 아닌 줄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집니다. 이 진리를 알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타향살이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살림차리는 코스로 가는 이들을 보면 사실 너무 부럽다. 특히 요즘처럼 몸이 좀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제 몸은 자기가 알아서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한 몸 건사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로움이 때론 삶의 다른 무게에 치이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하면서 집을 나와 살기 시작했으니 따져보면 어느새 16년 째. 인생의 절반을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만, 한국 사람은 몸만 나오고 마음은 늘 고향집에 가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안다면, 내가 지금하고 있는 투정도 조금은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객지생활은 특히 몸이 아플 때 제일 서러운데,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크다. 제대로 관리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은 이내 분노로 탈바꿈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면 다한 결과인 것을. 다만 앞으로 내 노력을 쏟아붓는 비율을 조금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아직도 내가 사는 이 방은 '잠드는 곳'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징그러운 도시에 내 한 몸 쭉 펴 누울 곳이 있긴 하는 걸까?
글 써 놓고 내가 생각하는 꼴을 돌아 보니 난 아직도 객지생활 적응 못한 모양이다. 으이구 이 화상.
프레임 의 저자이신 최인철 교수님이 진행하는 교양강좌를 회사에서 마련해주어 듣게 되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는데 무척 흥미롭다. 예로 나온 Asian Disease 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데..
당신은 600 명의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지도자다. 아래 2가지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
Program A : 200 명을 살릴 수 있다. Program B : 1/3 확률로 600 명 전부를 살릴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에는 위 질문을 바꿔서
Program C : 400 명은 포기하고 죽도록 놔둬야 한다. Program D : 1/3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는다.
첫번 째 질문의 경우 대부분 A 를 선택한다고 하고 두번째에는 많은 사람이 D 를 고른다고 한다. 즉 사람은 이익상황에서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손실상황에서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이는 즉 우리의 행동은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에 의해 제약받는다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사고의 틀과 행동의 관계가 인간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자. 먼저 행복의 구성요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H = S + C + V
행복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자발적 요인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유전적 요인은 약 50%, 환경적 요인은 10%, 자발적 요인은 나머지 40% 를 차지한다.(from How to be happy ) 즉 우리가 집중해서 개선할 수 있는 수치는 40% 를 차지하는 V 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을 제약하는 사고의 틀, 프레임을 바꾸는 것.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의 핵심은 행동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듯이, 보다 높은 차원의 프레임 속에서 생각하는 버릇을 가져야 스스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것이 행복으로 직결된다.
어떤 청소부에게 왜 그리 열심히 청소하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 고 답했다고 한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보다 높은 프레임에서 찾아냈다는 이야기.
편도선이 부으면 우선 제일 먼저 입으로 들어마시는 공기 중에 있는 미세 먼지나,, 세균 들을 막는 기능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열이 날 수도 있고요. 또 다른 원인은, 편도선이 위에 있는 림프선을 자극시킨다는 겁니다. 림프선이 자극되면( 림프선을 흔히 연수 반사구 라고 들 하더군요,) 자신도 모르게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집니다,,
갑자기 부어버린 편도선 때문에 고생 중. 어젯밤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거의 사경을 헤맸다고나 할까? 몸이 추웠다가 더웠다가 왜 그런가 했더니 지식인이 위처럼 가르쳐 준다. 회사는 오늘 병가를 내고 쉬었다. 유독 올해는 병가를 자주 쓴 듯하다. 신종플루 유행도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일단 쉬고 보는 게 바람직. 점심 때가 되어 날이 따뜻해지니까 조금 버틸만 하다. 밤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는 몸관리에 신경써야겠다.
조금 더 인내를 했어야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설치해버린 World of Warcraft. 명품은 세월을 타지 않는다더니 그 재미 어디 가지 않고 여전하더라. 시간 날 때 조금씩 하려고 결제를 했는데, 점점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 전엔 게임할 시간에 뭔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 했으나, 종국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마음마저 무거웠다. 바라던 걸 저질러 버린 지금 어찌됐든 즐겁다. 놀이는 우뇌 자극에 필수라는 말이 유일한 위로다.
게임 이외에 글쓰기같은 것도 우뇌에 자극을 많이 준댄다. 예를 들면 블로깅.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나온 말이다. 굳이 블로깅이 아니더라도 일기를 쓴다거나 낙서를 한다거나 하는 게 우뇌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캡쳐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이크로 블로깅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TV 를 계속 보면 바보 밖에 안되듯이, 트위터니 미투데이니 하는 마이크로 블로깅도 마찬가지. 사람의 머리는 최소 30 분 이상의 context 속에서 사고를 이어 가야 한다. 몇 초는 우리 머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단위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오늘부터 블로깅을 자주 해보려고 한다. 쓰고 난 결과물이 비공개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토양이 풍부해지면 싹들이 절로 자라듯이 공개되는 글들 수도 많아 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평소 민주당, 김진애 의원 블로그를 열심히 구독하는데, 개미후원의 힘이 절실하다는 그녀의 글을 봤다. 소소한 금액이나마 보탰다. 처음으로 내본 정치후원금이었다. 이게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지?(민주당 김진애 정치 후원)2009-12-25 11:52:25
방에서 티브이를 한정없이 틀어 놓을게 아니라 원하는 프로만 골라서 보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Tv 편성표를 좀 가까이 해야지. 어릴 때 만화만 골라 볼 때는 자주 이렇게 했는데, 어째 다 크고 나서 tv 에 더 빠져사는 것 같지?(me2mms)2010-01-02 20:18:18
지하철이 교대역에 잠시 멈춰섰고, 여느때처럼 시각장애자가 노래를 틀며 옆칸에서 건너왔다. 생각외로 멋진목소리를 가진 그 아저씨의 노래에 칸내에는 아무런 다른 소리도 나지 않았다.(me2mms)2010-01-06 10:28:10
차를 타고 가며 차창 너머로 광고지를 버리는 행위. 대부분의 경우 찌라시 내용은 키스방이다. 이거 어떻게 신고하는 방법 없나?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듯2010-01-06 13:50:05
2009 년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 글을 써보려다 몇 번을 그냥 지웠었다. 지난 해 시작이 좀 씁쓸했기 때문. 일로 바쁜 때이기도 했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그다지 곱씹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책도 그다지 많이 읽지도 못했다. 16 권 정도 밖에 안된다. 리뷰를 안 쓴 것도 몇 권 있었을 테니 그걸 감안 하더라도 서른 권은 못 넘겼다. 뭐 양이 중요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독서하는 데 시간 투자를 더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한 해 건진 것도 있다. 뭐랄까 ‘삶’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까. 살아가면서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뀐 한 해였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들을 조금 알게 되면서 나라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들에 대해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립되는 중이다.
해가 바뀌고 나이에 무게 감이 생긴 기분이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만큼 내 속도 꽉 차졌으면 좋겠다. 후회할 만한 언사는 삼가도록 스스로 늘 돌아볼 일이다.
어찌됐든 시간은 술술 흘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365일이 되길 바래본다.
많은 정보는 머리속을 혼란케하고 내 행동의 잣대를 어지럽힌다. 나는 무슨 깜냥으로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고 단정지어버린단 말인가?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의 근거는 오직 행동에만 기인해야 한다. 그 사람의 머릿속에 대한 추측은 자제하자.(me2mms)2009-12-18 14:47:52
다음 주가 되면 ‘본격! 일없는 나날’ 을 보내야 될 듯 하다. 갑작스러운 QFE 수준의 버그가 아닌 이상 이제는 고치지 못한다. 47 개월을 때려 박아 만든 조그만 컨트롤이 오피스 제품과 함께 배포될 것이다. 다음 버전 개발 들어가기 전에 생긴 이 공백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내 커리어의 성장도 결정된다. 위기지학에 대한 아쉬움이 못내 컸는데, 이 시간을 어디 한번 잘 활용해 봐야겠다.
동시에 인사이동도 조금 생긴 듯 하다. 옆 자리에서 같이 일하시던 분은 다른 기회를 찾아 떠나시고 팀에는 뉴페이스들이 들어왔다. 연차가 오래 되신 어떤 분도 가정을 위해 회사를 나가신다. 그 외에도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바꿔보고자 하는 많은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물 안에서 부지런히 놀려대는 백조의 발 마냥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인생을 위해 열심히들 살아가는 가 보다. 회사에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아마 물 안에서 설쳐댈 물갈퀴 하나 쯤은 가지고 있을 테지. 그래 남들이 무슨 상관이냐? 내 인생의 노나 저어 가자. 어기여차 디여라.
- 미투데이에 쓴 짧은 글 모음으로 블로그 글을 대체해 보려고 했더니, 역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더라. 역시 한번씩은 좀 길게 잡설들을 풀어놓아야 속이 개운한 거지. 사람이 소변만 보고 살 수 있나.
- 요즘 읽었던 책들이 혁신, 창업, 변화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벤쳐 창업에 대한 로망이 없지 않으나, 아직은 좀 더 때를 기다려야 한다. 필드에서 직접 몸으로 구르며 배우기엔 지금의 현실이 그리 좋은 배움터가 되주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둥주리 속에서 이리 저리 부딫히며 깨닫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책.
- 벌써 3년 이더라. 회사 입사한 지 말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 빨리 흐른다는 어른들의 말씀,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더라. 3년 동안 나는 얼마나 성장했나? 돌이켜 보면, 어느 정도는 마음에 드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불만족스런 것들도 많았다. 내 롤모델은 뭔지,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 지 고민은 점점 깊어지는데 명확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 이성, 합리, 분석, 공학적 접근. 이것들이 세상 만사를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갈려고 노력한다. 근데 좀 아닌 것 같다. 성격만 모나지겠더라. 제길. 방법이 잘못됐나?
- 마음에 생긴 상처는 가만히 놔둔다고 자연치유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나와서 사람의 행동이나 사회적 관계 또는 생각의 표현 등에 그 흉터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게 상처인지 뭔지 조차 평상시에 알기가 어렵기 때문에, 한번씩 꾹꾹 눌러서 아픈지 안 아픈지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