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회사 근처 헬스장을 3개월 등록했었다. 그러나 초반의 좋은 기세에도 불구하고 출석율 5번 남짓 기록하며 완전 실패. 주요 실패원인은 나의 게으름이지만 그 외 다른 것들도 나열해보자면,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하다 보니, 운동 후 밥 챙겨 먹기가 쉽지 않다. 회사가 많은 동네다 보니 혼자 밥먹을 만한 환경이 되는 음식점이 많지 않다.
오후에 졸립다.
시간에 쫓기며 운동해야 한다.
땀으로 인해 세탁을 자주 해야 한다.
어찌됐든 작년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이번에는 그냥 집 앞에 있는 헬스장을 등록했다. 밤 늦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어 좋고 주말에도 가능하니 더 좋다. 오랜만에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에 몸이 기뻐하는 게 느껴질 정도다. 진작에 필요한 거였는데 제대로 못했던 게 아쉽다. 이번에 등록한 3달은 완전 열심히 다녀서 건강해져야지.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를 갖고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사는 거예요.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어나게 됩니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인생은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하루 삶에 만족하지 못해서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저 길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과 같습니다. 길가의 풀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줄을 알면 인생에서 괴로운 문제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립니다.
다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괴롭고 화나고 짜증나는 불행한 인생이 있고 즐겁고 가볍고 행복한 인생이 있는 거예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하루 세 끼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나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세요. 눈으로 온갖 색깔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귀가 있어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 이로 음식을 씹어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또 두 손이 있어서 내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고 아직 두 다리가 멀쩡해서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런 감사의 마음을 내면 내 인생이 행복하고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거예요. 하루 세 끼 먹는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하루 세 끼 먹는 것 말고 뭔가 특별한 걸 요구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사는가?’ 하고 묻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물으세요. 사는 것은 그냥 사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살 수 있으니까요.
만약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다면, 그럼 어떻게 해야 자유롭고 행복해지느냐를 생각하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느냐고 물으면 통상적으로 우리들은
첫째 돈이 많아야 한다, 둘째 지위가 높아야 한다, 셋째 명예나 인기가 있어야 한다는 식이에요. 그러나 행복은 돈과 지위와 인기에 있지 않습니다. 옛날 사람들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더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더 잘살고 있는데도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정치인, 관료들을 만나보면 이런 분들이 더 속박을 받고 괴로워합니다. 인기 있는 탤런트나 배우들도 외롭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가난하고 지위가 없으면 행복하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은 하루에 밥을 한 끼밖에 못 먹고 옷도 다 떨어진 것을 입고 가난하게 삽니다. 이 사람들 중에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돈이 있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에요. 이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어떻게 쓰면 괴로워지고 어떻게 쓰면 행복해지는가? 어떻게 쓰면 속박을 받고 어떻게 쓰면 자유로워지는가?’ 하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라고 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62억 인구 중에 50억이 넘는 인구는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서 사는 게 꿈입니다. 거기 가서 살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아메리칸 드림’을 꿉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미국이나 캐나다에 살고 있으면서 행복하지 않다면 다른 어디를 간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아요. 즉 천국에 간다고 해도 행복해지지 않아요.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할 때, 당장 죽겠다고 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천국에 가서 괴로울지 즐거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은 음식이 필요하고, 입을 것이 없는 사람에겐 옷이 필요해요. 그런데 최소한 하루에 한 끼라도 먹을 수 있고 몸을 가릴 수 있는 한 벌의 옷이 있는데도 온갖 불평으로 괴로운 사람은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저 길 옆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로워집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나와서 노래 한 곡 해 보세요.”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하기보다는 “저 노래 못해요.”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이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못하는 거고, 잘나고 싶거나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유롭지가 못한 것입니다.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없거나 잘 보이고 싶지 않으면 “노래 한 곡 하세요.” 할 때 “예” 하고 노래하면 되는 거예요. “무슨 노래를 불러라, 어떻게 불러라, 잘 불러라.”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노래하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입니다. 길게 하라, 짧게 하란 얘기도 없으니 그냥 한 소절 부르고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딴 건 잘하는데 노래에 자신이 없으면 이 노래로 인해 내 평가가 달라질 것 같아서 망설이는 거예요. 또 내가 평소에는 노래를 잘하는데 내 앞에 부른 사람이 아주 노래를 잘 불러버리면 안 부르려고 해요. 잘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부자유스러운 거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줄을 알면 자연스럽게 나가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래하러 나가세요.” 하면 나가서 노래 부르고 사람들이 듣기 싫어서 “이제 그만 하세요” 하면 또 “예, 알겠습니다.” 하고 들어오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노래 못한다고 다섯 번쯤 빼던 사람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은 그냥 평범한 노래를 안 부르고 옆에서 도와줄 수 없는, 모르는 노래나 가곡을 불러요.
이처럼 내가 남보다 잘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 인생이 피곤한 거예요.
결혼 생활도 그냥 둘이 같이 밥 먹고 살면 되는데, 영화나 소설처럼 아기자기하고 가슴이 늘 찌릿찌릿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가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괴로워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연애할 때는 두근거리기도 했는데 막상 결혼해서 살아보면 대화도 별로 없고 무미건조하다는 거지요. 그렇다고 남편이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고 아내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도 ‘연애할 때보다 대화도 별로 없고 무미건조하다. 결혼 생활이 이건 아니야.’라는 식이에요.
밥은 특별한 맛은 없지만 몸에는 좋고, 인스턴트식품은 입과 혀는 좋지만 건강을 해치는 것과 같은 거예요. 결혼한 부부가 “우리 남편(아내)은 나를 끔찍이 사랑해. 나 없이는 못 살아.” 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할지는 몰라도 그것은 남편(아내)이 그어놓은 울타리 안에 갇힌 행복입니다. 울타리로부터 한 발만 밖으로 나가도 큰일 난 것처럼 불행이 닥쳐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새장에 갇힌 새의 행복이에요. 진정한 행복도 아니고 자유도 아닙니다. 그래서 붓다가 남기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원한다면 마음을 이렇게 가볍게 가지기 바랍니다. 자기 스스로 삶을 행복하게 만들고 삶이 별 거 아닌 줄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집니다. 이 진리를 알고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타향살이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부모님 밑에서 살다가 결혼해서 살림차리는 코스로 가는 이들을 보면 사실 너무 부럽다. 특히 요즘처럼 몸이 좀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제 몸은 자기가 알아서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한 몸 건사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로움이 때론 삶의 다른 무게에 치이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하면서 집을 나와 살기 시작했으니 따져보면 어느새 16년 째. 인생의 절반을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만, 한국 사람은 몸만 나오고 마음은 늘 고향집에 가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안다면, 내가 지금하고 있는 투정도 조금은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
객지생활은 특히 몸이 아플 때 제일 서러운데, 그 이면에는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가장 크다. 제대로 관리 못한 데 대한 자괴감은 이내 분노로 탈바꿈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이것 또한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면 다한 결과인 것을. 다만 앞으로 내 노력을 쏟아붓는 비율을 조금 조절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아쉬운 게 있다면 아직도 내가 사는 이 방은 '잠드는 곳'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말 이 징그러운 도시에 내 한 몸 쭉 펴 누울 곳이 있긴 하는 걸까?
글 써 놓고 내가 생각하는 꼴을 돌아 보니 난 아직도 객지생활 적응 못한 모양이다. 으이구 이 화상.
프레임 의 저자이신 최인철 교수님이 진행하는 교양강좌를 회사에서 마련해주어 듣게 되었다. 프레임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는데 무척 흥미롭다. 예로 나온 Asian Disease 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데..
당신은 600 명의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지도자다. 아래 2가지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
Program A : 200 명을 살릴 수 있다. Program B : 1/3 확률로 600 명 전부를 살릴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에는 위 질문을 바꿔서
Program C : 400 명은 포기하고 죽도록 놔둬야 한다. Program D : 1/3 확률로 아무도 죽지 않는다.
첫번 째 질문의 경우 대부분 A 를 선택한다고 하고 두번째에는 많은 사람이 D 를 고른다고 한다. 즉 사람은 이익상황에서는 안정적인 선택을 하고 손실상황에서는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이는 즉 우리의 행동은 문제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에 의해 제약받는다는 말이다.
다시 돌아와서 사고의 틀과 행동의 관계가 인간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보자. 먼저 행복의 구성요소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H = S + C + V
행복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자발적 요인으로 구성된다. 이 중 유전적 요인은 약 50%, 환경적 요인은 10%, 자발적 요인은 나머지 40% 를 차지한다.(from How to be happy ) 즉 우리가 집중해서 개선할 수 있는 수치는 40% 를 차지하는 V 이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을 제약하는 사고의 틀, 프레임을 바꾸는 것.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의 핵심은 행동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 마치 비행기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편안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길 수 있듯이, 보다 높은 차원의 프레임 속에서 생각하는 버릇을 가져야 스스로 행동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이것이 행복으로 직결된다.
어떤 청소부에게 왜 그리 열심히 청소하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다.” 고 답했다고 한다. 자기 행동의 의미를 보다 높은 프레임에서 찾아냈다는 이야기.
최근에 산 책 중 안 읽은 것들은 대략 이 정도. 내가 책 읽는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이 아니라서 꾸준히 읽어도 족히 두 달은 걸릴 것 같다. 거기다 요즘 관심 가는 분야의 기술 서적을 다시 몇 권 구매하려고 하니 더 늦어질 지도 모르겠다. 책들을 다 읽어보는 게 목적이라면 마냥 읽기만 할 게 아니라 대강의 독서 플랜을 세워서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정해진 텍스트북도 없이 내가 주제를 만들어 세미나를 해보려고 하고 있다. 지식 공유 만큼이나 경험 공유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한 주제는 ‘Burn down Estimation’. 지난 Office 14 을 진행하면서 작업양과 예측을 할 때 스크럼의 번다운 챠트를 활용해 봤더니 꽤 도움됐던 내용들이 있어서 공유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세미나는 내일인데 일단 손 가는 대로 슬라이드를 계속 만들어 보고 있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잡아야 되는데 이게 좀 애매모호하다. 발표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지도 몰라 리허설을 몇 번 해봐야 될 것 같다.
슬라이드 내용을 요약하자면, 번다운 챠트는 팀이 아니라 개인 수준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하며 그걸 통해 보다 사실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Estimation 을 할 수 있다 정도? 개발자에게 있어 자신의 작업에 대한 추정 또한 능력이라면 능력이랄 수 있기에 여러 도구들을 활용해보며 갈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 SW융합 수요창출 = 현재 국산화율이 낮은 임베디드SW를 육성하기 위해 ‘제조-시스템반도체-임베디드SW’ 기업간 연계를 강화하고, 국방 R&BD를 민수용 임베디드SW의 Test-bed로 활용하여 현재의 1~15%의 수준에 불과한 임베디드SW 국산화율 제고할 계획이다
그런데 정말 소프트웨어에서 국산화율이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게 되었다.
제조업은 비록 순수익이 낮지만 거대한 매출 그리고 관련 산업들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국산화율이 중요하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시장은 그 생리가 다르다. 이 곳에서는 1등이 시장을 독식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다른 말로 하자면 고객들의 이동성이 무척 높기 때문에- 시장을 장악하지 못할 바에야 그냥 다른 전략을 생각하는 게 보다 현명할 것이다.
그러니까 국산화보다 중요한 건 국산/외산에 상관없이 합리적인 본바탕 위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까에 집중해야 한다. OS 인프라는 이미 기존에 나와 있는 걸로도 충분하다. 문제는 어플리케이션을 활성화 시키는데 투자해주는 것이고, 그것이 만약 특정 기업을 지원하게 되어 중립이어야 할 정부의 입장이 애매해진다면, 합리적인 본바탕을 까는 데 충실하면 된다. 지금 눈을 돌려 시장을 보면 어떤 회사가 애플리케이션 활성화를 가로 막고 있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뭐 어쨌든. 아이폰 충격이 MB의 후두부도 강타했나 보다. 닌텐도 DS 보고 우리는 왜 이런 거 못 만드나 소리를 했을 때만 해도, 아 그 분이 NDS 하드웨어를 말씀하시는 건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엔 굴지의 핸드폰 제조업체가 있음에도 왜 아이폰을 못 만드나 고민하시다 답을 찾으셨나 보다. 아 삼성 핸폰엔 아이폰 OS 가 안 올라가서 그랬구나! 하고. 그리곤 답을 내놓으신 게다. 에휴
편도선이 부으면 우선 제일 먼저 입으로 들어마시는 공기 중에 있는 미세 먼지나,, 세균 들을 막는 기능이 저하됩니다. 그래서 열이 날 수도 있고요. 또 다른 원인은, 편도선이 위에 있는 림프선을 자극시킨다는 겁니다. 림프선이 자극되면( 림프선을 흔히 연수 반사구 라고 들 하더군요,) 자신도 모르게 체온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집니다,,
갑자기 부어버린 편도선 때문에 고생 중. 어젯밤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거의 사경을 헤맸다고나 할까? 몸이 추웠다가 더웠다가 왜 그런가 했더니 지식인이 위처럼 가르쳐 준다. 회사는 오늘 병가를 내고 쉬었다. 유독 올해는 병가를 자주 쓴 듯하다. 신종플루 유행도 있었으니 조금이라도 증상이 있으면 일단 쉬고 보는 게 바람직. 점심 때가 되어 날이 따뜻해지니까 조금 버틸만 하다. 밤에 고생하지 않으려면 오늘 하루는 몸관리에 신경써야겠다.
조금 더 인내를 했어야 했는데 결국 참지 못하고 설치해버린 World of Warcraft. 명품은 세월을 타지 않는다더니 그 재미 어디 가지 않고 여전하더라. 시간 날 때 조금씩 하려고 결제를 했는데, 점점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 하고 있다. 전엔 게임할 시간에 뭔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 했으나, 종국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마음마저 무거웠다. 바라던 걸 저질러 버린 지금 어찌됐든 즐겁다. 놀이는 우뇌 자극에 필수라는 말이 유일한 위로다.
게임 이외에 글쓰기같은 것도 우뇌에 자극을 많이 준댄다. 예를 들면 블로깅.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나온 말이다. 굳이 블로깅이 아니더라도 일기를 쓴다거나 낙서를 한다거나 하는 게 우뇌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캡쳐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이크로 블로깅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TV 를 계속 보면 바보 밖에 안되듯이, 트위터니 미투데이니 하는 마이크로 블로깅도 마찬가지. 사람의 머리는 최소 30 분 이상의 context 속에서 사고를 이어 가야 한다. 몇 초는 우리 머리가 사용하는 시간의 단위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오늘부터 블로깅을 자주 해보려고 한다. 쓰고 난 결과물이 비공개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토양이 풍부해지면 싹들이 절로 자라듯이 공개되는 글들 수도 많아 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감상부터 말하자면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보여줬던 환상의 세계가 더 높은 완성도로 다시 만들어 진 듯 하다. 평행하게 두 줄거리를 엮어 가는 것도 마찬가지. 해변의 카프카 때보다 훨씬 멋지게 얘기를 풀어낸다.
성(性)에 관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아마 소설 속의 1Q84 라는 우주에서 그것은 정신적인 결합에 대한 비유로 쓰이다 보니 그럴지도 모른다. 소설에는 아마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비유들이 많이 있는 듯하다.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은 걸 보면 그건 독자의 몫인가 보다. 아니면 애당초 비유 같은 건 없었거나.
텍스트의 양이 꽤 많아서 틈틈이 짬을 내서 읽었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하지만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엮어내는 이야기에 빠져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될 것이다.
자기 전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방영되던 다큐멘터리. 아니 시트콤이라고 해야 하나? 깔깔이를 입은 7남자가 해발 600m 폐허에서 벌이는 권력투쟁을 그렸다.
프로그램의 형식이 무엇보다 신선했고 일반인들로 구성된 출연자들도 모두 개성이 넘쳤다. 욕을 하기도 하고 거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면이 우리 일상을 더 정확히 조명해준 듯 했다.
완장 하나가 가져다 주는 권력의 단 맛과 쓴 맛. 사람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부글대는 그 욕망들. 무엇보다 1,2,3 대로 완장이 넘어 가면서 그려지는 행태가 현실의 그것과 너무 비슷했다는 것이다.
권위를 세우지 못한 1대 완장.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치고 당선된 2대 완장. 하지만 외부에 비쳐지는 모습을 위해 타협을 선택하며 스스로 무너진 2대. 그 뒤로 차가운 얼음목욕의 경쟁을 뚫고 뽑힌 3대 완장은 조직, 권력을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 무너지며 물러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방송은 리더십에 대한 고찰을 시청자에게 숙제로 던져준 듯 하다.
마지막엔 가장 필요 없는 사람 한 명을 남겨두고 모두 완장 촌을 떠나게 되는 데, 그 사람은 완장으로 뽑힌 지도 못한 채 그저 하는 일에 불평 불만을 늘어놓던 이였다.
평소 민주당, 김진애 의원 블로그를 열심히 구독하는데, 개미후원의 힘이 절실하다는 그녀의 글을 봤다. 소소한 금액이나마 보탰다. 처음으로 내본 정치후원금이었다. 이게 좋은 시작이 되면 좋겠지?(민주당 김진애 정치 후원)2009-12-25 11:52:25
방에서 티브이를 한정없이 틀어 놓을게 아니라 원하는 프로만 골라서 보는 버릇을 들여야겠다. Tv 편성표를 좀 가까이 해야지. 어릴 때 만화만 골라 볼 때는 자주 이렇게 했는데, 어째 다 크고 나서 tv 에 더 빠져사는 것 같지?(me2mms)2010-01-02 20:18:18
지하철이 교대역에 잠시 멈춰섰고, 여느때처럼 시각장애자가 노래를 틀며 옆칸에서 건너왔다. 생각외로 멋진목소리를 가진 그 아저씨의 노래에 칸내에는 아무런 다른 소리도 나지 않았다.(me2mms)2010-01-06 10:28:10
차를 타고 가며 차창 너머로 광고지를 버리는 행위. 대부분의 경우 찌라시 내용은 키스방이다. 이거 어떻게 신고하는 방법 없나?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저해하는 듯2010-01-06 13:50:05
2009 년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 글을 써보려다 몇 번을 그냥 지웠었다. 지난 해 시작이 좀 씁쓸했기 때문. 일로 바쁜 때이기도 했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그다지 곱씹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책도 그다지 많이 읽지도 못했다. 16 권 정도 밖에 안된다. 리뷰를 안 쓴 것도 몇 권 있었을 테니 그걸 감안 하더라도 서른 권은 못 넘겼다. 뭐 양이 중요한 건 아니다만, 그래도 독서하는 데 시간 투자를 더 해야 될 것 같다.
지난 한 해 건진 것도 있다. 뭐랄까 ‘삶’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고 할까. 살아가면서 중요시해야 하는 가치들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뀐 한 해였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내 자신을 조금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는 뜻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들을 조금 알게 되면서 나라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들에 대해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립되는 중이다.
해가 바뀌고 나이에 무게 감이 생긴 기분이다. 묵직함이 느껴지는 만큼 내 속도 꽉 차졌으면 좋겠다. 후회할 만한 언사는 삼가도록 스스로 늘 돌아볼 일이다.
어찌됐든 시간은 술술 흘러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365일이 되길 바래본다.